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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2-21 13:22
[국내] 필리핀의 귀환
 글쓴이 : 뉴스타임
 

지난 2월 2일 필리핀 정부는 미국에게 자국 내  4개의 군사기지에 대해 추가적인 사용을 허용하는 중요한 조치를 단행했다. 우리 국내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동아시아 전략환경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즉 필리핀 정부가 미중 패권경쟁 또는 나아가 패권전쟁과 관련하여 특단의 전략적 선택을 결정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포함된 필리핀 루손섬 최북단의 카가얀 기지에서 대만까지는 불과 400Km 밖에 되지 않는데, 이는 대만에서 600Km가 넘는 일본 오키나와 미군 기지에 비해 훨씬 더 가까운 거리다. 다시 말해서 향후 필리핀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이루어질 경우 미국이 최단의 거리에서 자국의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반면 이는 미국과 중국간 무력충돌시 필리핀이 최전선의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고 있다. 즉 필리핀이 미국에게 새로운 군사기지를 제공한다는 것은 유사시 일본과 한국 내 미군기지 및 시설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직접적인 군사적 타격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필리핀 정부의 결정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라 보아야 할 것이며, 이는 필리핀 외교안보정책 기조의 대반전인 것이다. 대다수의 동남아 ASEAN 국가들은 향후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무력 사용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대중국 견제에 나섬으로써 중국과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결코 원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6월에 취임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의 전략적 선택은 노골적으로 반미적이었던 두테르테 전임 대통령의 외교 행태와는 극명하게 대조적이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2016년 취임 직후부터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난했고, 심지어 같은 해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기간 중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욕설까지 퍼부은 바도 있었다. 또한 그는 임기 내내 항상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에게는 긴밀하게 접근했으며, 러시아와도 관계증진을 도모해 왔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적으로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들 중 가장 친미적인 국가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록 필리핀은 19세기 말부터 1945년 독립할 때까지 미국의 식민지배를 경험했기 때문에, 미국-필리핀 관계를 때로는 애증적 관계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1951년 미국과 필리핀이 공식적 동맹관계를 구축한 이래 냉전기간 중 필리핀은 미국에게 해외 최대의 해공군 기지를 제공한 바 있으며, 냉전종식과 함께 1992년 미군기지 철수가 단행된 이후에도 2014년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을 체결함으로써 5개의 필리핀 기지를 미국에 제공하면서 꾸준히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다. 

 

예외적이었던 두테르테를 제외한 역대 모든 필리핀 대통령들은 기본적으로 친미적이었으며, 친미 일변도의 외교노선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동시에 필리핀 일반국민 대중 다수가 가장 선호하고 호감을 갖는 국가는 항상 미국이었다. 미-필리핀 관계가 최악이었던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시절에도 미국에 대한 일반 필리핀인들의 호감도는 언제나 70%를 상회했다. 따라서 마르코스 대통령 정부의 출범과 그의 전략적 선택은 전통적으로 친미적인 필리핀 외교안보정책으로의 귀환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필리핀의 전략적 귀환은 친미외교 노선으로의 선회만으로 그치지 않고 일본과의 협력관계에서도 다시금 재확인되고 있다. 2월 9일 일본을 방문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기시다 일본총리와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향후 양국간 군사협력 원활화 협정(RAA)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이 협정은 두 나라 군대의 상대국 입국시 비자면제, 다량의 무기 및 탄약반입, 대규모 군사훈련, 유사시 상호파병 등을 용의하게 하는 준군사적 동맹의 내용들이 포함할 전망이다. 

 

또한 양국은 재난 발생시 구조활동과 인도적 지원을 위해 일본 자위대를 필리핀에 파견할 경우 입국절차를 간소화 하고 필리핀 내 군사기지를 활용하는 방안들도 검토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양국의 정상들은 현재 미국과 필리핀간 공동군사훈련에 일본 자위대가 참여함으로써 군사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로써 기존의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견제구도에 필리핀까지 가세하는 반중연대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최근 외교행보는 중국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중국은 필리핀의 외교행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올해 초 1월 4일 마르코스 대통령을 국빈초청하여, 양국간 가장 중요한 현안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문제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제안한 공동자원 개발방안 등에 대해 해법을 도출하려는 노력을 경주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회담에서 양측의 입장은 상호 평행선을 달렸고, 어떠한 의미있고 진전된 합의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이후 필리핀은 미국에 추가적으로 군사기지를 제공하고 일본과 준군사동맹 수준의 안보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필리핀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하여 인도네시아와도 안보협력을 강화한 바 있다. 필리핀은 2022년 9월 인도네시아와 해양안보 강화를 위한 방위협력 협정에 서명했는데, 테러대응과 국경관리 등 안보분야 뿐만 아니라 에너지, 해양개발, 보건교육 등의 협력강화가 주요 내용이다. 필리핀과 더불어 인도네시아의 최근 외교안보 행보도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는 달리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직접적인 당사국은 아니지만, 중국과 잠재적인 영유권 분쟁 대상국이다. 인도네시아 나투나 제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일부가 중국이 주장하는 9단선과 중복되어 있어 중국과 분쟁의 소지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인도네시아는 나투나 제도 주변의 석유 및 가스 등 자원개발을 본격화하기 위해 역내외국들과 군사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금년 상반기 중 말레이시아 및 부르나이와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며, 향후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QUAD 국가들과의 공동군사훈련까지도 검토하고 있다. 

 

   과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일부 ASEAN 국가들의 움직임이 시사하고 있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동남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점차로 퇴조하고 있음과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반중연대가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지난 3년 코로나 기간 동안 역내 중국 영향력의 근원이었던 중국경제가 최정점을 지나 하락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타국을 배려하지 않는 전투적인 전랑외교, 빈국들을 부채의 늪에 빠뜨리는 일대일로 등도 원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싱가폴 동남아연구소(ISEAS)의 2023년 동남아 현황 보고서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1300명 이상의 동남아 10개국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서베이 형태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역내 정치, 경제적 영향력은 여전히 중국이 압도적이지만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동남아 각국의 국민들이 더 선호하는 초강대국은 미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설문 중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미국과 중국이 동남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부득이 양자택일을 해야만 할 경우 미국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61.1%로 중국의 38.9% 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이다. 향후 동남아지역의 전략 구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끝> 

 

 ※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세종논평 2023-3호]​(2023.2.21)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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